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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 저녁의 집시(詩)/이상국 2017. 12. 12. 12:29
해 떨어지면
나무들은 이파리 속의 집으로 들어가고
먼 개울물 흐르는 소리
울타리 너머 밥 잦는 냄새 속으로
꼴짐 높게 진 사람들 두런두런 혼잣말하며
배가 장구통 같은 소 앞세우고 돌아오네
제 새끼 안 보인다고 아갈질
해대는 소울음 사이로
박쥐떼들 아무렇게나 날아간다
고등빼기 우리집에서는어여 와 저녁 먹으라고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어머니도 딱하다
나도 이젠 자식을 둘이나 두었는데
아직 내 이름을 알몸뚱이로 동네방네 불러대다니
하늘 뒤에서 별이 어둠을 씻고 나온다
키 큰 밤나무 꼭대기까지 차오르는 어둠속에서
새는 보이지 않고 울음소리만 들리고
변소 지붕 위의 박이 엉덩이처럼 희게 떠오른다
부엌문 여닫힐 때마다 불빛에 어리는 마당 식구들
어둠에 잠겨 찰랑거리는 마을에서
이파리들의 소곤거림
쇠똥 냄새
먼데 집 펌프대 삐걱거리며 물 올리는 소리
멍석가로 펄쩍펄쩍 개구리들 덤벼드는
그 머나먼 집 마당에서
나는 아직 저녁을 먹고 있다
(그림 : 오종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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