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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 홍연경)
마당에 살구꽃이 피었다
밤에도 흰 돛배처럼 떠 있다
흰빛에 분홍 얼굴 혹은
제 얼굴로 넘쳐버린 눈빛
더는 알 수 없는 빛도 스며서는
손 닿지 않는 데가 결리듯
담장 바깥까지도 환하다
지난 겨울엔 빈 가지 사이사이로
하늘이 튿어진 채 쏟아졌었다그 하늘을 어쩌지 못하고 지금
이 꽃들을 피워서 제 몸뚱이에 꿰매는가?
꽃은 드문드문 굵은 가지 사이에도 돋았다
아무래도 이 꽃들은 지난 겨울 어떤,
하늘만 여러번씩 쳐다보던
살림살이의 사연만 같고 또
그 하늘 아래서는 제일로 낮은 말소리, 발소리 같은 것 들려서 내려온
신(神)과 신(神)의 얼굴만 같고
어스름녘 말없이 다니러 오는 누이만 같고
(살구가 익을 때, 시디신 하늘들이 여러 개의 살구빛으로 영글어올 때우리는 늦은 밤에라도 한번씩 불을 켜고 나와서 바라다보자
그런 어느날은 한 끼니쯤은 굶어라도 보자)
그리고 또한, 멀리서 어머니가 오시듯 살구꽃은 피었다
흰빛에 분홍 얼룩 혹은
어머니에, 하늘에 우리를 꿰매 감친 굵은 실밥, 자국들'시(詩) > 장석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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