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안진 - 커피 칸타타시(詩)/유안진 2017. 4. 2. 09:13
꿈도 없이 뉘우침도 없고
잠까지도 없는 하루의 끝에서
마지막 한 걸음 떼어놓다 말고
한번이라도 뒤돌아보게 될까 봐 한 잔을 마시고
눈 딱 감고 뛰어내리려고 또 한 잔을 마시고
거기 정말로 잠이 있나 확인하려고 한 잔을 더 마시고
잠 속으로 돌진할 마지막 준비로
머그잔 절반을 커피가루로
나머지 절반은 냉수로 채우지
캄캄한 잔 속에 풍덩 뛰어들면
케냐 에콰도르 에티오피아의 어느
커피 농장으로 직행하게 되지
너무 빨리 달려가서
뜨는 해가 지는 줄도 모른 채
까맣게 새까맣게 잠이 되고 말지
까만 손톱으로 커피원두를 따는
작고 깡마른 소녀가 되지
가지마다 닥지닥지매달린 작고 동그란
원두열매가 되어버리지
(그림 : 서정임 화백)
'시(詩) > 유안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안진 - 감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0) 2017.08.05 유안진 - 밥해주러 간다 (0) 2017.04.15 유안진 - 천국 (0) 2017.02.07 유안진 - 때로는 한눈팔아도 된다 (0) 2016.09.18 유안진 - 빨래꽃 (0) 2016.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