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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골목길이 좋다
서울 종로 피맛골 같은 골목길보다
도시 변두리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블록담이 이어져 있는 산동네
의정부 수락산 밑
천상병 시인의 집이 있던 그런 골목길이 좋다
담 밑에 키 큰 해바라기가 서 있고
개똥이 하늘을 쳐다보다가
소나기에 온몸을 다 적시는 그런 골목길이 좋다
내 어릴 때 살던 신천동 좁은 골목길처럼
전봇대 하나 비스듬히 서 있고
길모퉁이에 낡은 구멍가게가 하나쯤 있으면 더 좋다
주인 할머니가 고양이처럼 졸다가 부채를 부치다가
어머니 병환은 좀 어떠시냐고
라면 몇개 건네주는
그 가난의 손끝은 얼마나 소중한가
늦겠다고 어서 다녀오라고
너무 늦었다고 어서 오라고 안아주던
어머니의 그리운 손은 이제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어느 술꾼이 노상방뇨하고 지나가는
내 인생의 골목길이 좋다
신천동 :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그림 : 윤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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