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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문재 - 연금술
    시(詩)/이문재 2017. 2. 10. 23:06

     

    배추는 굵은 소금으로 숨을 죽인다
    미나리는 뜨거운 국물에 데치고
    이월 냉이는 잘 씻어 고추장에 무친다
    기장멸치는 달달 볶고
    도토리묵은 푹 쑤고
    갈빗살은 살짝 구워내고
    아가미 젓갈은 굴 속에서 곰삭힌다
    세발낙지는 한손으로 주욱 훑고

    안치고, 뜸들이고, 묵히고, 한소끔 끓이고
    익히고, 삶고, 찌고, 지지고, 다듬고, 다지고, 버무리고
    비비고, 푹 고고, 빻고, 찧고, 잘게 찢고
    썰고, 까고, 갈고, 짜고, 까불고, 우려내고, 덖고
    빚고, 졸이고, 튀기고, 뜨고, 뽑고, 어르고
    담그고, 묻고, 말리고, 쟁여놓고, 응달에 널고
    얼렸다 녹이고 녹였다가 얼리고

    쑥 뽑아든 무는 무청부터 날로 베어먹고
    그물에 걸려 올라온 꽃게는 반을 뚝 갈라 날로 후루룩
    알이 잔뜩 밴 도루묵찌개는 큰 알부터 골라먹고
    이른 봄 두릅은 아침 이슬이 마르기 전에 따되
    겨우내 굶주린 짐승들 먹을 것은 남기고
    바닷바람 쐬고 자란 어린 쑥은 어머니께 드리고
    청국장 잘 뜨는 아랫목에 누워
    화엄경을 읊조리던 그런 날들이 있었다 

    (그림 : 김현숙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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