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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률 - 스미다
    시(詩)/이병률 2016. 7. 14. 00:53

     

    새벽이 되어 지도를 들추다가

    울진이라는 지명에 울컥하여 차를 몬다

    울진에 도착하니 밥냄새와 나란히 해가 뜨고

    나무가 울창하여 울진이 됐다는 어부의 말에

    참 이름도 잘 지었구나 싶어 또 울컥

     

    해변 식당에서 아침밥을 시켜 먹으며

    찌개냄비에서 생선뼈를 건져내다 또다시

    왈칵 눈물이 치솟는 것은 무슨 설움 때문일까

    탕이 매워서 그래요? 식당 주인이 묻지만

    눈가에 휴지를 대고 후룩후룩 국물을 떠먹다

    대답 대신 소주 한 병을 시킨 건 다 설움이 매워서다

     

    바닷가 여관에서 몇 시간을 자고

    얼굴에 내려앉은 붉은 기운에 창을 여니

    해 지는 여관 뒤편 누군가 끌어다놓은 배 위에 올라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한 사내

    해바라기 숲을 등지고 서럽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사내

     

    내 설움은 저만도 못해서

    내 눈알은 저만한 솜씨도 못 되어서 늘 찔끔하고 마는데

    그가 올라앉은 뱃전을 적시던 물기가

    내가 올라와 있는 이층 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한 몇 달쯤 흠뻑 앉아 있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돌아가는 사내의 집채만한 그림자가

    찬물처럼 내 가슴에 스미고 있다

    (그림 : 최정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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