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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효근 -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시(詩)/복효근 2016. 6. 29. 18:55

     

    6월 저녁 어스름

    어둠이 사물의 경계를 지워나갈 때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어두워지는 일이 이리 좋은 것인 줄 이제 알게 되네

    흐릿해져서

    흐릿해져서 산도 나무도

    무엇보다도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싸웠던 일들도 흐릿

    흐릿해져서

    개망초 떼로 피어선 저것들이 안개꽃이댜 찔레꽃이댜

    안개꽃이면 어떻고 찔레꽃이면 어뗘

    개망초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뗘

    꽃다워서 좋더니만

    이제 꽃답지 아니해서 좋네 이녁

    화장을 해서 좋더니

    화장하지 않아서 좋을 때가 이렇게 왔네

    저녁 이맘때의 공기 속엔 누가 진정제라도 뿌려놓은 듯

    내 안에 날뛰던 짐승도 순하게 엎드리네

    이녁이라고 어디 다를라고

    뭐 죽도록 억울하지는 않아서 세상 다 용납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듯

    어둠 속에 둥글어진 어깨를 보네

    이대로 한 이십 년 한꺼번에 더 늙어지면

    더 어둡고 더 흐릿해져서

    죽음까지도 이웃집 가듯 아무렇지도 않을 깜냥이 될까

    모든 일이 꼭 이승에서만이란 법이 어디 있간디

    개망초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꽃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그때 기억할까 못 하면 또 어뗘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그림 : 최광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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