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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봉 - 복사꽃 아래 천년시(詩)/배한봉 2015. 8. 16. 19:50
봄날 나무 아래 벗어둔 신발 속에 꽃잎이 쌓였다.
쌓인 꽃잎 속에서 꽃 먹은 어린 여자가 걸어나오고,
머리에 하얀 명주수건 두른 젊은 어머니가 걸어나오고,
허리 꼬부장한 할머니가 지팡이도 없이 걸어나왔다.
봄날 꽃나무에 기댄 파란 하늘이 소금쟁이 지나간 자리처럼 파문지고 있었다.
채울수록 가득 비는 꽃 지는 나무 아래의 허공.
손가락으로 울컥거리는 목을 누르며,
나는 한 우주가 가만가만 숨 쉬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장 아름다이 자기를 버려 시간과 공간을 얻는 꽃들의 길.
차마 벗어둔 신발 신을 수 없었다.
천년을 걸어가는 꽃잎도 있었다.
나도 가만가만 천년을 걸어가는 사랑이 되고 싶었다.
한 우주가 되고 싶었다.
(그림 : 이석보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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