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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관 - 옴마 편지 보고 만이 우서라시(詩)/시(詩) 2015. 6. 18. 01:01
어느 해 늦가을 어머니께서는
평생 처음 써보신 편지를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자식에게 보내셨지요.
서툰 연필 글씨로
맨 앞에 쓰신 말씀이
"옴마 편지 보고 만이 우서라."
국민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셨지만
어찌어찌 익히신 국문으로
"밥은 잘 먹느냐"
"하숙집 찬은 입에 잘 맞느냐"
"잠자리는 춥지 않느냐"
저는 그만 가슴이 뭉클하여
"만이" 웃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그해 가을처럼 찬 바람이 불어오는데
하숙집 옮겨 다니다가
잃어버린 편지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하릴없이 바쁘던 대학 시절,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올 때까지
책갈피에 끼워두고
답장도 못 해 드렸던 어머님의 편지를.(그림 : 하삼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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