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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호 - 섬진강에 지다시(詩)/강연호 2015. 6. 17. 17:16
가을 섬진강을 따라가려면
잠깐의 풋잠에 취해보는 것도 좋다
구례에서 하동쯤 지날 때
섬진강은 해가 지는 속도로 흘러간다
어쩌면 지는 해를 앞세우기 위해
강은 제 몸의 만곡을 더욱 휘고 싶을 것이다
여기서는 길도 섬진강을 따라가므로
갈 길 바쁜 사람도 홀연 마음 은근해진다
나고 죽는 일이 괴롭다면 내처 잠들어
남해 금산 바닷물에 처박힐지 모른다
문득 깨어나 모골이 송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헛것이 이끌었다고 말하지는 말자
다 섬진강을 따라나선 죄일 뿐
정신 차리고 싶다면 쌍계사 절간 밑에서
은어회라도 바득바득 씹어보자
너도 먼 길을 취해 여기까지 왔구나
날것의 몸보시를 받다 보면
출가와 환속은 한통속처럼 저물 것이므로
그러면 또 삶이란 죽음이란
녹슨 단풍잎같이 애면글면 글썽거릴 것이다
그렇다고 그 까닭 모를 서러움을
섬진강 물결이나 가을볕에 빗대지는 말자(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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