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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밝힌 불빛은 근조등이었다고 한다
나는 부의금도 없이 이곳에 왔으므로 슬픔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없다
대체로 인사치레의 조문이 아니라면
상가에서 정작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인 것이다
죽은 사람이 그저 죽은 사람이듯
떠난 식솔들 역시 기다리지 않았으리라
한때 이곳에 쥔 붙였던 육신을 따라 빈집은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창살과 문설주가 아직 버티는 것은
한꺼번에 무너지기 위한 악다구니일 뿐 햇살이 빈집의 서까래를 들쑤신다
언젠가는 저 햇살의 무게조차 견디지 못해 폭삭 주저앉고야 말 것이다
나는 곡비가 아니어서 울지 않는 게 아니다
어떤 숨죽인 물음도 헛되이 빈집은 녹슨 못처럼 고요를 구부러뜨린다
나는 다만 밥 짓는 냄새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간곡한 예를 올리고 돌아설 뿐이다
(그림 : 전성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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