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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욱 - 봄맛에 데다시(詩)/시(詩) 2015. 6. 2. 12:44
바람 속에 몸을 말고 어머니는
저수지 둑에서 봄을 담아오곤 하였습니다
산야초 이름을 알면 함부로 밟을 수 없다며
햇나물을 한 소쿠리씩 꺼내왔습니다
그런 며칠간 쌉쌀한 찬뿐이었지만
새 나물을 많이 먹어야 그해를 이겨내고
뒷날 다가올 쓴맛을 견딘다고도 하셨습니다
쥐도 가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씀바귀, 냉이가 가문 날의 양식이었다는 걸
학교로 향하던 이른 아침
마을로 이어진 비탈진 둑에서 냉이 달래를 캐고 있는 어머니의
뒷 모습이 가냘팠지만
그 위에 반짝이는 햇살이 어머니처럼 투명했습니다
배운 것이 없어 줄 것도 없다는
꾸부정한 몸에 새봄이 돋고 있었습니다
그날
달래 냉이는 응원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냉이꽃보다 먼저 핀 어머니
사전에서 봄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 김영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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