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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연수 - 재봉골목
    시(詩)/시(詩) 2015. 4. 17. 11:12

     

     

     

    시접 좁은 집들이 답답한 그림자를 벗어놓은 골목
    봄볕이 은밀한 속살까지 훔쳐보자
    눈치 빠른 꽃다지가 보도블록 틈으로
    한 뼘 여유분을 풀어놓는다

    걸음들이 서둘러 시침과 박음질을 오가고
    안경 쓴 민들레가 골목입구부터 노란 단추를 채운다

    꼬박 달려온 노루발이 숨을 고르는
    지퍼 풀린 시간
    바짝 죄던 마감이 커피를 뽑아 내리면
    잠시 농담 속을 서성이는 슬리퍼들이 붉은 입술을 찍는다

    고단한 품이 넘쳐 돌려막기에 바쁜 카드들
    골목이 느릿느릿 바람 쐬러 나가면
    쪽창을 열어젖힌 채 갖가지 공정에 바쁜 꽃밭,
    마감에 채 눈꼽을 떼지 못한 꽃도 있다

    뒤집은 오후에 납기일을 접어 넣고 체불을 오버로크해도
    자꾸만 뜯어지는 생의 밑단들
    한 톨 한 톨 땀방울을 꿰면
    낡은 목장갑처럼 올 풀린 하루도 말끔해질까

    손이 입을 먹여 살리는 골목
    날짜는 지문 닳은 둥근 거울 속에서 풀리고
    한겨울 맥문동처럼 처져있던 사람들 다시,
    하청으로 일어선다

    (그림 : 김용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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