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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다 내 짐을 내릴 수 있는가.
한 때 열정으로 너무 많은 꿈을 실었다.
내 몫이 아닌 것마저 챙겨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는 것이 고통이다.
내 것이 많을수록 행복의 지수는 낮아지고 고통에 일그러지는 모순의 길에 들어섰다.
어디서 나의 긴 고통의 여정은 끝나고 내 달아오른 굽을 맑은 물에 담그고 갈증을 없앨 수 있는가.
내 목적지로 삼을 오아시스는 어디서 물 냄새 풍기며 푸르러지는가.
내 영혼의 곳간이 가득 채워지는 것이 내 영혼이 무거워져 꼼짝 달싹 못하는 과적의 길인지 몰랐다.
한 발 앞으로 간다는 것이 고통의 바다에 이르는 것이다.
비틀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딘가에 내 짐을 내릴 수 있다는 희망 때문,
스스로 등 짐 지웠으나 스스로 내릴 수 없는 혹이 되었다.
가면 갈수록 난 완고해지는 고통으로 가득 채워지는 절망의 집 한 채
지금은 그믐도 끝나 달 푸른 길인데도 저 포구에서 꿈을 하역하고 떠나는 뱃고동 소리 들리는데
가도 가도 땅으로 꺼지는 것 같은 이 침몰의 길,
어디서 검고 탁해져 내 생을 더 무겁게 하는 내 피를 흡혈해버릴 수 천 수 만 그루의 나무뿌리,
헤아릴 수 없는 나무 이파리가 파닥이고 있는가.
내 생은 오버되었다.
살아갈수록 깃털처럼 가벼워져 약한 바람에도 실려 수 천 개의 산맥도 가볍게 넘어
설산에 이르는 길이 내 길이어야 했다.
과욕이 결국은 과적에 이르는 길이었다.
내가 견딜 수 있는 하중보다 더 많이 싣고 항해하는 것이 위태한 줄 알았지만
노동을 멈추지 않는 내 젊은 나날이었다.
일손을 잠깐 놓고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고 시드는 꽃을 슬퍼하는 것이 죄악인 줄 알았다.
어디서 내가 모로 쿵 쓰러져 내가 내짐을 떠날 수는 없지만 나를 짓눌러오는 무게를 잠깐 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나,
어디서 내 짐을 부리고 온몸을 부르르 털며 낙타 같은 긴 울음으로 나의 휴식을 예고할 수 있는가.
폭설이 지나간 자리에 보리가 푸르렀다는데 내 지나온 흔적 흔적마다 고이는 것은 결코 마르거나 증발하지 않을 비애
밤새 내가 터벅이며 가는 과적의 길을 아는가.
비틀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온몸으로 참회의 길 가기 때문,
이글거리며 떠올라 과일을 익히는 태양도,
들녘을 건너오는 푸른 바람도 다 내게 고통이고 슬픔이 되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면 갈수록 더 깊이 뼈에 새겨지는 말, 과욕이 결국은 과적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림 : 강명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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