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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 가을의 시선시(詩)/강인한 2014. 9. 17. 00:37
굴참나무 느릅나무 오리나무 조팝나무 들쭉나무 월귤나무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휘휘 감은 칡넝쿨서껀
이제 막 단풍 들기 시작하는 연두에서 노랑을 마중하고 노랑에서 주황을 받고
다시 빨강으로 넘기고 담갈색도 받아넘기면서 아직 남은 초록을 얼싸안듯 바라보노라면,
흔들바위에서 신흥사 골짝 비칠비칠 내려서는 어름 황홀하게 만나는,
색색 빛깔 화음을 부르는 소리 온 산에 가득, 비탈을 허덕허덕 내려오는데 이게 뭐냐.
오래전에 못 본 청동불상 하나 산문 앞에 떡하니 퍼질러 앉았으니 없던 것이 불쑥 솟아 어리둥절,
구구한 중생들 기와 불사에 완력으로 저도 한 몫 거드는 셈인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잘은 모르지만
다시 태어난다고 하였다.
골짜기 감돌아 물소리도 단풍이 잘 들어서 흰 돌 속으로
가만가만 들어서고 있었다.
없던 것이 갑자기 생겨나는 게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고
알 수 없는 다른 생명으로 숨을 탄다고
등 뒤에서 두런두런 주고받는 말소리도 단풍이 잘 들어서
돌아보니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고
꺼먼 너럭바위에 다람쥐 한 마리 오도카니 서 있었다.
달아나지도 않고 한참을 까만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하마 낼모레 벗게 될 내 몸 주워 입으려고
녀석은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연두에서 노랑을 마중하고 노랑에서 주황으로 다시 빨강으로 갈색으로
단풍이 지쳐 이냥 뚝뚝 져버리는 건 아니라고, 그런 것은 아니라고.
산빛 하나하나 색색으로 풀어서 나무에 돌에 하나하나 고운 이름 불러 제 자리에 앉혀주는 것이라고
물소리는 흐르고 또 흘러서 올올이 흰 바람이 되어 날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림 : 김길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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