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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유안진 2014. 8. 14. 02:11

     

     

    유안진(柳岸津)

    1941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대전여자중학교, 대전호수돈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5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마산제일여자중·고등학교와 대전호수돈여자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1970년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였고, 1976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신여자대학교·단국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가르치다가 1981년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아동가족학과 교수가 되었다.

     

    1965∼1967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달〉 〈별〉 〈위로〉가 3회 추천되어 등단하였고, 1970년 첫 시집 《달하》를 출판하였다.
    이향아·신달자와 함께 펴낸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1986)에 실린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기도 하였으며,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1996년 펜문학상, 1998년 제10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시집 《절망시편》(1973), 《물로 바람으로》(1976), 《날개옷》(1978), 《달빛에 젖은 가락》(1985), 《영원한 느낌표》(1987),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1993), 《누이》(1997) 등이 있고, 수필집으로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1985), 《그리운 말 한마디》(1987), 장편소설로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1990), 《땡삐》(1993), 아동교육 전공서적으로 《한국전통 아동심리요법》(1985), 《한국전통의 육아방식》(1988), 《한국전통사회의 유아교육》(1991) 등이 있다.

     

    연륜 무게와 삶에 대한 지혜 다발 - 유안진
    시는 일상성을 뛰어 넘는 시인의 상상에서 비롯되어 언어와 만난다. 이 진부한 말이 시를 이해하는 나침반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에 시인에게 상상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좋은 덕목이다. 다른 각도에서 말한다면 시인만의 독특한 상상은 번쩍이는 영감(inspiration)에서 비롯되고 그 영감은 시인의 영혼과 관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정신이란 이러한 상상의 평원에 펄럭이는 언어의 깃발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유안진의 시집 "다보탑을 줍다"에는 번뜩이는 시인의 영감이 언어와 만나 시집의 이곳 저곳에서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새롭게 성찰하게 한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의 변경을 새롭게 넓혀 가게 한다.
    시인은 시집의 후기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前略) 나는 새것에 목마르다. 새롭게 거듭나서 헌것을 새로운 시로 새롭게 재탄생시키고 싶다. ...(중략) 모든 형식 모든 그릇을 다 만들어본, 그것을 위해서는 그 그릇밖엔 없는 것 같은, 어떤 이즘에 갇히지도 매이지도 않는 무한 자유롭고 엉뚱한 시를,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것이 담긴 유일무이한 그릇이기를, 편편마다 완전 독립적인 시를바랐는데.’

    시집 "다보탑을 줍다"는, 그래서 이전의 유안진 시집 보다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매우 자유스러운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새것에 목마른 시인의 시정신과 결코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보다 시인의 새로운 것에로의 강렬한 지향은 시인의 상상력을 무한하게 넓혀 번뜩이는 영감으로 미쳐 생각하지 못한 상상의 평원을 보게 한다. 읽는 사람 상상의 가장자리를 무너뜨리게 하여 그 변경을 넓혀 준다.
    다보탑은 불국사에 있다. 신라시대 만든 이 탑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다보탑을 줍다>로 되면 깜짝 놀랄 수밖에. 불국사 대웅전 앞에 석가탑과 나란히 서 있는 다보탑은 손으로 줏을 그런 대상이 아니다. 일상적인 상상의 허(虛)를 찌르고 고정관념을 여지 없이 조각내고 만다. 누가 10원짜리 동전에 그려진 다보탑을 제대로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시인은 동전을 줍는 것을 ‘다보탑을 주웠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多寶塔)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釋尊)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차려 다시 보면 빼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다보탑을 줍다>-전문

    다보탑에서 석존을, 석존에서 영취산으로, 영취산에서 불국정토로 자유자재하게 시인의 상상은 나래를 편다. 시간적으로는 3천여년 가까이를, 공간적으로는 네팔과 인도에서 경주와 서울의 골목길까지 시인의 상상은 한없이 길고 넓은 시공간(時空間)을 넘나들고 있다. 이것이 유안진의 시정신이고 ‘편편마다 완전독립적인’ ‘유일무이’한 시를 지향하는 시정신이다.
    유안진의 시세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끝 연의 마지막 2행을 주의깊게 살펴볼 일이다.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 그렇게 살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라는 것은 시인 자신을 향한 물음이다. 다보탑이 새겨진 10원짜리 동전에 시인 자신을 이입 시킨 것이다. 쓸모 있는 듯도 하고 쓸모 없는 것 같기도 하면서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 것 아닌가,라는 시인 자신의 자문자답임으로 설의법으로 되어 있다. 한없이 넓고 긴 시공간을 지배하던 시인의 시정신은 이순(耳順)의 삶을 살아온 지혜와 아우르면서 이 작품을 인생시의 반열에 가져다 놓는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죄다.
    -<비 가는 소리>-부분-마지막 연

    이순에 접어든 시인의 지혜는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라는 구절이 말해주고 있듯이 <다보탑을 줍다>에서 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지혜의 가닥들을 모아 시집 '다보탑을 줍다'에서 다발로 엮어 놓고 있다. 이것을 신경림은 ‘현상을 걷어내고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 그것은 시인 유안진이 가진 상상력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얼마간 예외의 시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유안진 시의 이러한 인생시적 모습은 즉자적(卽自的)인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인 자신이 경험하고 인지한 것을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철저하게 다지고 다진 다음 직설적인 수사로 표현해 놓고 있다. 표현속에서 현실과 삶에 대한 대자적(對自的)인 사항을 담기는 하지만 시인이 인식한 것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음의 시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눈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들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가시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편견이 시큰둥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내가 나의 감옥이다>-전문

    둘째 연에서 바깥은 시인에게 보여지고, 자신의 안은 안 보였다는 표현은 마지막 연과 연결시켜보면 시인 자신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시인 자신이 자신의 감옥이라는 언표(言表)에는 폐쇄적이고 모든 것이 자신에서 출발한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시가 주관적인 예술의 범주에 있는 한 저주받은 장르라는 투의 말을 한 것은 사르뜨르다. 그렇게 심하게 표현하지 않드라도 현실과 사회를 통해 자신을 통찰하는, 대자적 인식의 연장에서 즉자적인 성찰이 따르는 시적 표현의 설득력을 유안진의 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없겠는가. 그렇다면 얼마간 직정적인 시적조사(詩的措辭)의 행간이 유연해 질 수도 있을 것 같고, 얼핏 언어유희로 보이기도 하고 재치로도 보여 단조롭고 다소 경박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시적 표현을 극복할 수 있지는 않을까.
    ‘진아(眞我)를 찾아 자진(自盡)’하는 세계로 유안진의 시집 "다보탑을 줍다"를 말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 그 진아를 찾으려 살아온 이순이란 연륜의 삶에 대한 무게와 지혜의 다발을 보게 되는 것은 이 시집을 읽는 하나의 보람이다. (김선학: 전 동국대 교수. 문학평론가)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는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깊은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영원히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진정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 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거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론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 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를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 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길 자산이 될걸....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지란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닦으며 살기를 바라지도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에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지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 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 눈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도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도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는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하되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 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 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 두 사람을 사랑한다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다.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주어도 그는 날 주책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 웃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해도

    그의 숙녀 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 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더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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