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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 좋은 술집시(詩)/이정록 2014. 5. 30. 17:30
내 꿈 하나는 방방곡곡 문닫은 방앗간을 헐값에 사들여서 술집을 내는 것이다내 고향 양지편 방앗간을 1호점으로 해서 「참새와 방앗간」을 백 개 천 개쯤 여는 것이다
그 많은 주점을 하루에 한 곳씩 어질어질 돌고 돌며 술맛을 보는 것,
같은 술인데 왜 맛이 다르냐? 호통도 섞으며 주인장의 어깨도 툭 쳐보는 것이다
아직도 농사를 짓는 칠순노인들에겐 공짜 술과 안주를 올리고가난한 농사꾼의 자식들에겐 막걸리 한 주전자쯤 서비스하는 것이다
밤 열 시나 열두 시쯤에는 발동기를 한 번씩 돌려서 식어버린 가슴들을 쿵쾅거리게도 하고,
조금은 슬프기도 하라고 봉지쌀을 나눠주는 것이다
마당엔 소도 두어 마리 매놓고 우마차 위엔 볏가마니며 쌀가마니를 실어놓는 것,
몰래 가져가기 좋도록 쌀가마니나 잡곡가마니에 왕겨나 쌀겨라고 거짓 표찰도 붙여놓는 것이다
하고많은 꿈 중에 내 꿈 하나는,오도독오도독 생쌀을 씹으며 돌아가는 서늘한 밤을 건네주고 싶은 것이다
이미 멈춰버린 가슴속 발동기에 시동을 걸어주고,
어깨 숙인 사람들의 등줄기나 사타구니에 왕겨 한 줌 껄끄럽게 집어넣는 것이다
웃통을 벗어 탈탈 달빛을 털기도 하고 서로의 옷에서 검불도 떼어주는
어깨동무의 밤길을 돌려주고 싶은 것이다
논두렁이나 자갈길에 멈춰 서서 짐승처럼 울부짖게 하는 것이다
(그림 : 장리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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