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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저물 무렵시(詩)/강은교 2014. 5. 12. 00:56
저물 무렵 네가 돌아왔다
서쪽 하늘이 열리고
큰 무덤이 보이고
떠나가는 몇 마리의 새
식구들은 다시 안심한다
곧 이불을 펴리라
지난해를 다 바쳐 마련한
삼베이불이
곳곳에서 펴지리라
나는 헌옷을 벗고
낡은 피는 수채구멍에 버린다
곁눈질로 우는 피의 기쁨
뒤뜰에선 오랜만에
꽃잎 떨어지는 소리
마지막 꽃잎도 떨어지고 나면
더 무엇이 살아서 떨어지겠는가
서쪽 하늘이 열리고
네가 돌아왔다
살아 있는 것 모두
물이 되도록
물 끝에 거품으로 일 때까지
성실한 너는 또다시 오라.(그림 : 김영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