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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 호르르 호르르르 가을 아침
취여진 청명을 마시고 거닐면
수풀이 흐르르 벌레가 호르르르
청명은 내 머릿속 가슴속을 젖어들어
발끝 손끝으로 새어나가나니
온 살결 터럭끝은 모두 눈이요 입이라
나는 수풀의 정을 알 수 있고
벌레의 예지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나도 이 아침 청명의
가장 고웁지 못한 노랫꾼이 된다
수풀과 벌레는 바고 깨인 어린애
밤새워 빨고도 이슬은 남았다
남았거든 나를 주라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
방에 문을 달고 벽을 향해 숨쉬지 않았느뇨
햇발이 처음 쏟아오아
청명은 갑자기 으리으리한 관을 쓴다
그때에 토록 하고 동백 한알은 빠지나니
오! 그 빛남 그 고요함
간밤에 하늘을 쫓긴 별상의 흐름이 저러했다
온 소리의 앞소리요
온 빛깔의 비롯이라
이 청명에 포근 축여진 내 마음
감각의 낯익은 고향을 찾았노라
평생 못 떠날 내 집을 들었노라(그림 : 김성실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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