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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 산방 일기시(詩)/이상국 2014. 4. 10. 13:53
새벽 한기에 깨어 마당에 내려서면
녹슨 철사처럼 거친 햇살 아래
늦매미 수십 마리 떨어져 버둥거리고는 했다.
뭘 하다 늦었는지 새벽 찬서리에 생을 다친 그것들을,
사람이나 미물이나 시절을 잘 타고나야 한다며
민박집 늙은 주인은 아무렇게나 비질을 했다.
주인은 산일 가고 물소리와 함께 집을 보며나는 뒤란 독 속의 뱀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서럽도록 붉은 마가목 열매를 깨물어보기도 했다.
갈숭어가 배밀이를 하다가 하늘이 보고 싶었던지,
어디서 철버덩 소리가 나 내다보면 소리는 갈앉고 파문만 보이고는 했다
마당 가득한 메밀이며 도토리 멍석에 다람쥐 청설모가 연신 드나든다.저희 것을 저희가 가져가는데 마치 도둑질하듯 다람쥐는 살금살금,
청설모는 덥석덥석 볼따구니가 터져라 물고 간다
어느덧 저녁이 와 어느 후미진 골짜기에 몸을 숨겼던 밤이 산적처럼 느닷없이 달려들어멀쩡한 집과 나무와 길을 어둠속에 처박는 산골,
외롭다고 풀벌레들이 목쉰 소리를 하면
나는 또 산 너머 세상의 의붓자식 같은
내 인생을 생각하며 밤을 새고는 했다
(그림 : 백중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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