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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규 - 겨울이었다시(詩)/양문규 2014. 2. 28. 12:58
윗방 수숫대 통가리에 고구마가 들어 있었다
뒤뜰 장독대 옆 배가 불룩한 구덩이 속에는 무가 가득하였다
곳간 시렁에는 분이 듬성듬성 난 감 껍질이 소쿠리에 수북하였다
다섯 식구 겨울양식이었다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새끼를 꽜다
방등이 사이로 빠져나온 새끼줄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버지가 꼬아 놓은 새끼줄로
어머니와 누이는 가마니를 짰다
차가운 겨울이 거친 가마니 한 장에 덮여버렸다동생과 나는 딱지치기를 하다가
물컹하게 삶은 고구마를 동치미와 곁들여 먹었다
살짝 얼은 무를 깎아 먹고
무 방귀를 수시로 뀌면서 코를 막았다
감 껍질을 먹다가 하얀 분이 묻은 손가락을 빨아먹었다
손가락을 빨 때마다 아랫마을 점방
알록달록한 눈깔사탕이 간절하였다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웃집 개가 눈을 밟으며 짖어댔다
세상을 밝히는 등잔불이 봄 물결처럼 푸르른 겨울이었다(그림 : 장용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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