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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규원 - 둑과 나
    시(詩)/오규원 2014. 2. 5. 10:12

     

    길은 바닥에 달라붙어야 몸이 열립니다

    나는 바닥에서 몸을 세워야 앞이 열립니다

    강둑의 길도 둑의 바닥에 달라붙어 들찔레 밑을 지나

    메꽃을 등에 붙이고 엉겅퀴 옆을 돌아 몸 하나를 열고 있습니다

     

    땅에 아예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미루나무는 단단합니다

    뿌리가 없는 나는 몸을 미루나무에 기대고

    뿌리가 없어 위험하고 비틀거리는 길을 열고 있습니다

     

    엉겅퀴로 가서 엉겅퀴로 서 있다가 흔들리다가

    기어야 길이 열리는 메꽃 곁에 누워 기지 않고 메꽃에서

    깨꽃으로 가는 나비가 되어 허덕허덕 허공을 덮칩니다

     

    허공에는 가로수는 없지만 길은 많습니다 그 길 하나를 혼자 따라가다

    나는 새의 그림자에 밀려 산등성이에 가서 떨어집니다

    산등성이 한쪽에 평지가 다 된 봉분까지 찾아온 망초 곁에 퍼질러 앉아

    여기까지 온 길을 망초에게 묻습니다

     

    그렇게 묻는 나와 망초 사이로 메뚜기가 뛰고

    어느새 둑의 나는 미루나무의 그늘이 되어 어둑어둑합니다 

    (그림 : 고찬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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