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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 가축의 정신시(詩)/박지웅 2014. 1. 20. 11:56
소 팔아 상경한 아비가 소처럼 일하고 돌아온 저녁
그림자가 뒤로 천천히 길어지더니 무거운 쟁기처럼 땅에 박히었다앞장선 아비를 따라 우리는 여물통 같은 한강에 입을 처박았다
그곳에 모인 소 무리를 둘러보며 아비는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하거라 너는 커서 소가 되면 안 된다
그 한 마디에 마음이 모였다가
돌멩이 맞은 듯 퍼져 나가곤 했다
쓸쓸한 마음이 몸을 부비면 가슴이 시리다는 것을 알았다한 입 뜯으면 강은 또 묵묵히 우리 입 앞에 여물을 채워놓았다
시린 네 개의 무릎을 가슴 안에 끌어넣어 데우던 아비의 밤
아비는 가축의 정신으로 우리 가족을 먹여살렸으니
한강의 기적을 일군 소들과 함께 이제쯤 인간의 국경으로 들어갔으리라코뚜레를 벗고 어느 전생의 저녁에 대하여 쓰는 밤
아비가 죽을 때까지 나는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
(그림 : 신재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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