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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 엽서 2시(詩)/장석주 2014. 1. 8. 15:02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님을 향한 길로 들어선 것은
굳이 운명이라고 할 것까진 없겠습니다길가에 널린 적의를 품은 돌멩이들
어두운 숲 속엔 맹금류의 사나운 눈빛은 번들거리지요
하지만 그 길로 나를 이끈 것은
내 의지와 힘보다 더 큰 어떤 것입니다사람들은 내가 때없이 스쳐가는 바람의 유혹에 빠졌다고
날 저물고 어둔 하늘 초록별의 손짓에 따랐다고
그 길을 에워싼 숲의 깊은 죄가 아니지요
님을 향해 가는 길은 내 기쁨이지만
시련과 수난의 길이기도 합니다많이 굶은 내 위장, 부족한 잠으로 늘 고단한
저 붉은 노을 속 주림과 쫓김의 거칠고 긴 내 행려
허물어진 몸뚱아리 마침내 병 도져 쓰러지면
서편 하늘 선회하는 까마귀들 더욱 까악 깍 거리겠지요땡볕 걷히고 소슬한 어둠 내리는 이 저녁 한길가에
부은 발등 지나가는 바람에 식히며 묻습니다
이 길을 얼마나 더 가야 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그림 : 김기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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