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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다
새의 붉은 부리가 쪼다 오래전에 그만두었다
입담이 좋았던 외할머니도 이 앞에선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나뭇짐을 내다 팔아 밥을 벌던 아버지도 이것을 지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덧 나도 사랑을 사귀고 식탁을 새로 들이고 아이를 얻고 술에는 흥이 일고
이 미궁의 내부로부터 태어난 지 마흔 해가 훌쩍 넘었다
내가 초로를 바라볼 때는 물론
내가 눈감을 그날에도 이것은 뒷산이 마을에게 그러하듯이 나를 굽어볼 것이다
나는 끝내 풀지 못한 생각을 들고 다시 캄캄한 내부로 들어갈 것이다
입술도 귀도 사라지고 이처럼 묵중하게만 묵중하게만 앉아 있을 것이다
집 바깥으로 내쫓김을 당해 한밤 외길에 홀로 눈물 울게 된 아이와도 같이
그리고 다시 이 세계에 새벽이슬처럼 생겨난다면 이것을 또 밀고 당기며 한 마리 새가 되고,
외할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마흔 몇 해가 되고.....
시간은 강물이 멀리 넘어가듯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림 : 김지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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