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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 가야금(伽倻琴)시(詩)/조지훈 2013. 12. 31. 11:24
1.
휘영청 달 밝은 제 창 열고 홀로 앉다
품에 가득 국화 향기 외로움이 병이어라
푸른 담배 연기 하늘에 바람 차고
붉은 술그림자 두 뺨이 더워온다
천지가 괴괴한데 찾아올 이 하나 없다
우주(宇宙)가 망망(茫茫)해도 옛 생각은 새로워라
달 아래 쓰러지니 깊은 밤은 바다런 듯
창망(蒼茫)한 물결 소리 초옥(草屋)이 떠나간다
2.조각배 노 젓듯이 가얏고를 앞에 놓고
열두 줄 고른 다음 벽에 기대 말이 없다
눈 스르르 감고 나니 흥이 먼저 앞서노라
춤추는 열 손가락 제대로 맡길랏다
구름끝 드높은 길 외기러기 울고 가네
은하(銀河) 맑은 물에 뭇별이 잠기다니
내 무슨 한(恨)이 있어 흥망(興亡)도 꿈속으로
잊은 듯 되살아서 임 이름 부르는고
3.풍류(風流) 가얏고에 이는 꿈이 가이 없다
열두 줄 다 끊어도 울리고 말 이 심사(心思)라
줄줄이 고로 눌러 맺힌 시름 풀이랏다
머리를 끄덕이고 손을 잠깐 쓸쩍 들어
뚱뚱 뚱 두두 뚱뚱 흥흥 응 두두뚱 뚱
조격(調格)을 다 잊으니 손끝에 피맺힌다
구름은 왜 안 가고 달빛은 무삼일 저리 흰고
높아가는 물소리에 청산(靑山)이 무너진다(그림 : 박연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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