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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서리 흰 별빛처럼 내린 아침, 커피 한잔 없이 들숨날숨만 데리고
얼음꽃 황홀하게 핀 나무들 사이를 걸었습니다.
추위가 회칼 같은 것으로 제 생살 저미듯 환히 피운 꽃
마음의 살을 막 저미는 꽃,
허나 걷다가 어디쯤서 뒤돌아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듦도 떨어짐도 없이 지워져 있는 꽃.
눈에 하얀 고리 무늬를 그린 동박새가
눈가루를 뿌리며 납니다.
햇빛이 갑자기 가루로 빛납니다.
눈 알갱이 하나하나에 뛰어들어
사라지는 빛의 입자들,
만난 것 채 알아채기도 전에 벌써
오늘 그리운 얼굴이 찰칵! 방금 눈앞에서
옛 그리움이 되는 꽃.
(그림 : 김한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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