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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를 이고 새벽길 떠난 어머니는
들지름 한 접시 다 타도록 돌아오지 않는데
멀리 이리목에선 여시가 울고
썩은 고구마 몇 개와 싱건지 한 사발로
동생들은 깊은 허기를 서로 다투던 날
싸래기눈 치는 소리 아득한 봉창가에 귀를 대이고
할매는 자꾸만 사위어 가는 화롯불을 다독이고
그때쯤이면 서울로 내뺀 누나와 군인 간 성
그리고 강원도 어디 탄광으로 갔다는 뜨네기 아버지가
원망보다 더한 그리움으로 천장무뉘에 어리었다
뒤란 대밭 속에서 속절없는 살가지 부엉이 울음소리에 놀라
동생들은 고랑내 나는 이불 속으로 숨어 끝내 잠들고
그러고나면 쪽문짝 문풍지는 꼭이 무슨 아홉 뿔 달린 귀신처럼 어찌 그리 울어예던지
마침내 동구 밖 개 짖는 소리 귀청 가득 생생할 쯤,
마지막 불씨 몇 개 남은 화롯불 다독이면 시퍼렇게 얼은 간난이를 업고
어머니는 그때사 보리쌀 두어 됫박의 눈발 쓴 보따리를 시커먼 마루청에 터엉 부리시곤 하던 날
(그림 : 정황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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