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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속없는’ 양념 같으니라구.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그 속을 어따가 비웠을까.
가만, 저 양반 우습게 볼 일 아니네.
속은 없어도 맵기는 이렇게 맵고,
뼈 한 마디 없어도 꼿꼿하기 이를 데 없네.
세상에 얕보고 허투루 볼 것 없음을
저이로 하여 다시금 알겠네.
조상 대대로 ‘음심’과 ‘분노’를 일으킨다 하여
절 밖에 쫓긴 물건(五辛菜)이었건만,
속 비우고 맘 비워서 저 홀로 사원이 되었구나.
닝닝닝-, 봄날 파밭 한 뙈기 날마다 초파일이로구나.
대파대사, 쪽파보살의 ‘무심법’을 들으러
저 속 빈 사원을 찾는 벌과 풍뎅이 신도가 무릇 기하이뇨.
(그림 : 조경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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