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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종기 - 이슬의 눈
    시(詩)/마종기 2013. 12. 23. 11:23

     

    가을이 첩첩 쌓인 산속에 들어가
    빈 접시 하나 손에 들고 섰었습니다.
    밤새의 추위를 이겨냈더니
    접시 안에 맑은 이슬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슬은 너무 적어서
    목마름을 달랠 수는 없었습니다
    하룻밤을 더 모으면 이슬이 고일까,
    그 이슬의 눈을 며칠이고 보면
    맑고 찬 시 한 편 건질 수 있을까,
    이유 없는 목마름도 해결할 수 있을까.

    다음 날엔 새벽이 오기도 전에
    이슬 대신 낙엽 한 장이 어깨에 떨어져
    부질없다, 부질없다 소리치는 통에
    나까지 어깨 무거워 주저앉았습니다.
    이슬은 아침이 되어서야 맑은 눈을 뜨고
    간밤의 낙엽을 아껴주었습니다.
    ㅡ당신은 그러니, 두 눈을 뜨고 사세요.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위도 보세요.
    다 보이지요? 당신이 가고 당신이 옵니다.
    당신이 하나씩 다 모일 때까지, 또 그 후에도
    눈뜨고 사세요. 바람이나 바다같이요.
    바람이나 산이나 바다같이 사는

    나는 이슬의 두 눈을 보았습니다. 그후에도

    바람의 앞이나 바다의 뒤에서

    두 눈 뜬 이슬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림 : 최장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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