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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 천 일이 지나면시(詩)/곽재구 2013. 12. 14. 13:23
오늘 내가 한 편의 시를 쓰고
내일 두 편 모레 세 편 쓴다면
천 일 후엔 천 편의 시를 쓸 수 있을까그때 나는 말하리라
이 아름다운 땅에 태어나
시간이 흐른다고 써야 할 시들을 쓰지 못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 또한 시간이 흐른다고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잖겠는가
써야 할 시들은 많은데
바람들은 맑은 햇살을 뿌리며
응달의 강기슭을 돌아가는데
울먹인 가슴 녹이며
이제는 고요하게 지켜보아야 할
두려움 모를 그리움만 들판 가득 쌓였는데
천 일이 지나면 혹시 몰라
이 아름다운 나라에 태어나
내가 하루 천 편의 시를 쓰지 못해 쓰러질 때
그때 말 못할 그리움은 밀려와서
내 대신 쓰지 못한 그리움의 시들
가을바람으로나 흔들려
내 사랑하는 사람들 귓속에
불어넣어주고 있을지.(그림 : 윤종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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