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곽재구 - 사평역(沙平驛)에서
    시(詩)/곽재구 2013. 12. 11. 16:38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그림 : 한희원 화백) 

     

    '시(詩) > 곽재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곽재구 - 겨울의 춤  (0) 2013.12.14
    곽재구 - 천 일이 지나면  (0) 2013.12.14
    곽재구 - 사람  (0) 2013.12.14
    곽재구 - 첫눈 오는 날  (0) 2013.12.14
    곽재구 - 그리움  (0) 2013.12.10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