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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형도 - 흔해빠진 독서
    시(詩)/기형도 2013. 11. 26. 16:51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

    죽은 자들은 모두가 겸손하며, 그 생애는 이해하기 쉽다

    나 역시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허용했지만

    때때로 죽은 자들에게 나를 빌려 주고 싶을 때가 있다

     

    수북한 턱수염이 매력적인 이 두꺼운 책의 저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불행한 생을 보냈다, 위대한 작가들이란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갔다, 그들이 선택할 삶은 이제 없다

     

    몇 개의 도회지를 방랑하며 청춘을 탕진한 작가는

    엎질러진 것이 가난뿐인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그는 분명 그 누구보다 인생의 고통을 잘 이해하게 되겠지만

    종잇장만 바스락거릴 뿐, 틀림없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내 손가락들은 까닭없이 성급해지는 것이다

     

    휴일이 지나가면 그뿐, 그 누가 나를 빌려 가겠는가

    나는 분명 감동적인 충고를 늘어놓을 저 자를 눕혀두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저녁의 거리로 나간다

     

    휴일의 행인들은 하나같이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그러면 종종 묻고 싶어진다, 내 무시무시한 생애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거추장스러운 마음을 망치기 위해

    가엾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흙탕물 주위를 나는 기웃거렸던가!

    그러면 그대들은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은 너무 많이 읽었다고

    대부분 쓸모없는 죽은 자들을 당신이 좀 덜어가 달라고

    (그림 : 김은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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