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오규원
-
오규원 - 둑과 나시(詩)/오규원 2014. 2. 5. 10:12
길은 바닥에 달라붙어야 몸이 열립니다 나는 바닥에서 몸을 세워야 앞이 열립니다 강둑의 길도 둑의 바닥에 달라붙어 들찔레 밑을 지나 메꽃을 등에 붙이고 엉겅퀴 옆을 돌아 몸 하나를 열고 있습니다 땅에 아예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미루나무는 단단합니다 뿌리가 없는 나는 몸을 미루나무에 기대고 뿌리가 없어 위험하고 비틀거리는 길을 열고 있습니다 엉겅퀴로 가서 엉겅퀴로 서 있다가 흔들리다가 기어야 길이 열리는 메꽃 곁에 누워 기지 않고 메꽃에서 깨꽃으로 가는 나비가 되어 허덕허덕 허공을 덮칩니다 허공에는 가로수는 없지만 길은 많습니다 그 길 하나를 혼자 따라가다 나는 새의 그림자에 밀려 산등성이에 가서 떨어집니다 산등성이 한쪽에 평지가 다 된 봉분까지 찾아온 망초 곁에 퍼질러 앉아 여기까지 온 길을 망초에게 묻습..
-
오규원 - 비가 와도 이제는시(詩)/오규원 2013. 12. 9. 18:17
비가 온다 어제도 왔다 비가 와도 이제는 슬프지 않다 슬픈 것은 슬픔도 주지 못하고 저 혼자 내리는 비 뿐이다 슬프지도 않은 비 속으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비 속에서 우산으로 비가 오지 않는 세계를 받쳐 들고 오, 그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비가 온다 슬프지도 않은 비 저 혼자 슬픈 비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비에 젖고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오늘도 가면도 없이 맨얼굴로 비 오는 세계에 참가한다 어느 것이 가면인가 슬프지도 않은 비 저 혼자 슬픈 비 (그림 : 김동욱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