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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길 - 방어진 포구에서시(詩)/시(詩) 2022. 4. 23. 15:42
무심히 출렁이는 폐선을 따라
심상한 깃발들이 흔들린다
한없이 넓고 깊은 미궁의 우주 속에
물결 하나의 이미지도 못 되는
삶을 속물스레 부여안고
낡은 뱃전을 디뎌본다
무딘 관절이 욱씬거리고
싸아하게 다가오는 해풍들이
우매한 시간들을 밀쳐낸다
입안 가득 채워진 비린내가
짓무른 도시의 하수처럼 쏟아진다
해 늦은 금빛 포구엔
어느 새 물비늘이 반짝거리고
돌아 온 몇 척의 고깃배들이
해진 그물을 부려 놓을 때
뜨거운 삶의 욕망처럼 달구어진
쇠말뚝에 굵은 닻줄을 감는
나이 든 어부들의 무거운 어깨가
물바람에 출렁인다.
굳이 절망일 것도 없는 선창가
막술집에서 우리는 낯선 눈빛들을 나눈다
그들의 거친 팔뚝엔 이미
한 모금의 연기를 뿜어낸 담배꽁초가
한때의 열정을 식히며
쉽게 버려질 것을 예감하고 있다
꽉 막힌 허파꽈리 찬숨을 마시듯
출출한 뱃속에 텁한 사발술을 넘기는
집어등 같은 무리들
그들의 어깨 위로 달큰한
희망 한 점 살빛으로 일어선다
(그림 : 김주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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