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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이 온 첫봄,
이제 꽃도 아니라고
쓸쓸한 순옥씨는 바람이라도 쐬려
복숭아 과수원 길 둔턱을 걸었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스웨터 깃을 여미고
치마를 접어 쪼그려 앉아 들꽃을 바라보다,
종소리처럼 지이잉 울었습니다
붉은 자주색 꽃잎이 바람에 흐드러지며
연한 가지가 순처럼 훌러덩 휘어지지만
꽃은 꽃을 피해
가지는 가지끼리 어슷하게 비껴줍니다
세찬 바람에도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들꽃도 있는데,
당장 꽃이 졌다고
더는 발아할 수 없는 둔덕이라고
쓸모없다 쓸쓸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살면서 피워냈던 꽃이
지금 이 들판의 꽃보다도
제법 많기 때문입니다꺽어 살짝 데쳐 된장 조금, 참기름 한방울
조물 조물 무친 맛난 나물
식구들 입으로 들어가는 게 진짜입니다
그동안 당신, 얼마나 많이 나물을 무쳤는데요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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