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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옷고름을 적시면 청색이 된다는
섬에 담겨 육지 살이 푸념을 짠물에 풀었어요
민박집 돌담은
가슴에 구멍을 허락했기에 긴 세월 견뎠다며
바람의 말을 빌려 들려주었어요
앞 파도가 뒤 파도를 다스림은
천 년이 걸리더라도
모래성을 쌓고 말겠다는 다짐을 켜켜이 써 내려요
은혜도 사랑도 몽땅 떼먹고
물 건너 도망 온 몹쓸 길손에게
울타리 밑 밀감도 몇 개
구운 갯비린내도 몇 점 권하는 나트막한
처마 안쪽에는 원초적 손품이 살가웠어요
물새는 다음 끼니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았고
허공이 길인 새는 나는 동안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걸
먼 남해에서 만났어요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던
상한 마음 떼어내는 법을 익히기에는 파도만 한 스승이 없었어요
새벽 해장 뚝배기 김국에서 건져낸 전복 껍데기에
텅 비워낸 후기가 무지개 체로 빼곡했어요
(그림 : 김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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