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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임 - sale 마네킹시(詩)/시(詩) 2021. 4. 11. 18:02
계절이 세일에 들어갔다
뜨겁다 못해 따가운 날씨
계절을 추월한 여름 같은 봄날
바람의 속지에는 알 수없는 바코드가 적혀있다
과속으로 치닫는 기온에 재빨리 재고를 처분하는 마네킹들
봄을 떨이하는 세일을 목에 걸고 서 있다
유행을 판매하는 마네킹들
봄은 그녀들이 추천하는 패션에 길들여진다
철지난 계절을 사는 것은 가계부들의 전략이다
부드러운 봄바람과 남아있는 목련의 화사함을 앞세운
마네킹의 판매전략
판매대에 널린 봄이 뒤섞인다
반값으로 처분된 계절은 쇼핑백에 담겨 사라지고
성급한 여름은 수영복을 걸치고 포즈를 잡고 있다
화려한 쇼윈도를 들여다보는 우리는 거리의 마네킹
이 도시에는 세일 가격을 달고 배회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저 노숙의 목에는 몇 벌의 내일이 남아있을까
반값으로 할인된 사내가
떨이해버린 시간을 채워달라고 엉거주춤 두 손을 내민다
(그림 : 조새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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