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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인 - 문이 있는 삽화시(詩)/시(詩) 2021. 2. 19. 18:24
문 따는 일로 생애가 저물었습니다
노을도 아름답군요
맨 처음 알은 어리둥절
없는 발밑에도 하늘이 있고
어떻게 굴러도 길이 났습니다
돌아보면 길은 시작만일 뿐
문과 계단의 연속이었지요
열어 열어도 앞을 막고 서던 문들
얼마나 숱한 문을 지나왔는지
얼마나 힘겹게 층층 계단 올랐는지
꽃들의 길도 이리 아득할까요
다 기억하지 못하는 다행 속에 길들은 잎맥처럼 가지런한 적이 없고 돌기들은 돌부리마냥 걷어찼습니다
계단들의 패대기치는 심술로 자주 시작점에서 다시 기어올라야 했던 유목의 길
얼마 남지 않았을 문들은 생각합니다 허약과 무기력의 시간들이 예약되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제의 길 가운데 신(神)의 사막은 꽃길이었습니다
몇 구비 구릉들 지나 모래 폭풍 속에 문을 찾는 일도 바람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일도 매혹
늘 신기루는 지평선 쪽으로 문을 가리켰지요
세상에 없는 문을
(그림 : 이형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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