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경자 - 낡은 집시(詩)/시(詩) 2020. 11. 27. 16:53
일 년이면 달이 두어번
대문을 열고 오는 밤이 있었다
저만치서 당고모 그림자를 메고 오는 달빛
저녁이면
흰밥이 따순 고봉으로 나오기까지
전 지지는 구수한 냄새와
숯불 위에 굽는 생선 냄새가
여럿 담을 타고 넘나들었다
고샅길을 쓸고
밤이 깊어 아이들끼리 북적이다 조는 시각
먼 곳에서 온 달그림자에
두 손 받쳐 들고 맑은 술잔을 올리며
절을 하던 일가친척들
밤은 따스하게 북두칠성 쪽으로 기울어 갔다
어느 날부터인지
관절통처럼 앓다가
서서히 그늘 드리워진 당고모집
녹이 슨 함석 대문 안에는
고양이가 물었다 흘린 뼈들이
소문처럼 쌓여 있었고
늙은 감나무 아래는
홍시로 떨어진 쓸쓸한 이름들이
달빛을 누르며 누워 있는 외진 밤이었다
(그림 : 설종보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명순 - 겨울 양지에서 (0) 2020.11.28 이준호 - 겨울 편지 (0) 2020.11.28 은기찬 - 황태처럼 (0) 2020.11.27 우은숙 - 선흘 동백 (0) 2020.11.27 도혜숙 - 금강에 달이 피기까지 (0) 2020.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