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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숙 - 먼지력(曆)
    시(詩)/시(詩) 2020. 9. 28. 17:47

     

    먼지는 날짜에서 피어난 부피다

     

    ​ 훅 불면 날아오르는 먼지들은 날개들의 반대파이거나 꽃의 대역(代役)이다 피어오르고 난 뒤엔 반드시 지는 일종이지만

    우수수 지지는 않는다 혹자는 가라앉지 못하므로 분한 마음일수도 있겠다

     

    깃털을 품고 있는 고요한 일습(一襲)일 것이다 평생 외출해본 적 없는 가구들을 들어내면 숨죽여 살아온 날들이 어깨를

    펴고 공중으로 솟구친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던 시간의 부스러기들이 소리 없이 눈부시다

     

    외면과 방치 사이에 헐거워진 틈, 틈을 털어 내다보면, 놀라 창밖으로 달아나려는 자욱한 방위들, 햇살을 젓는 야윈 헛

    날개짓이 반짝이며 뒤엉키다 힘없이 주저앉는다

     

    먼지력, 이보다 더 견고한 달력이 있을까

    나무둥치에 번져가는 나이테 같기도 한

    바닥을 벗어나려던 절박했던 순간들이

    들풀거미 줄같이 소복하다

     

    너무도 헐거워서 날아가는 것조차 잊고 있는 먼지들,

    그 시간의 허물이 날개의 부력이다 오래되면 흐릿한 시야가 되고 마는

     

    먼지는 사물이 벗어놓은 날짜다

    (그림 : 박태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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