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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화 - 고구마 키우기시(詩)/시(詩) 2020. 8. 1. 17:25
초록을 갖고 싶은 겨울이
크고 실한 황토빛 덩어리를 수반에 담갔다
리콜이 없는 그들의 세계
초록은 밝음만이 아니라 어둠도 필요했다
아기를 갖고 싶은 저 미혼모의 염원
하지만 이곳에서 삶의 공식 따윈 없었다
붉은 꿈을 꾸는 허공에 매달린 팔들
뿌리 내릴 땅 한 뼘 없어
희미한 발자국 하나 찍지 못한 채
물 한 모금에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다
포기를 모르는 저 푸른 팔뚝은
굵어지고 싶은 뿌리의 무게를 덜어내고
한줌 빛을 끌어당겨 영역을 넓히고 있다
덩이뿌리의 염원이 깊어질 때면
간절함을
허공에 의지해 몇 권의 책으로 써낸 줄기
내비게이션 없이도 척척 길을 찾는다
햇볕에 바랜 부활과 달빛에 물든 순환의 공식들은
상상임신인 줄도 모르고 그저
붉은 덩이가 주렁주렁 달렸다고 믿고 있지만
지척에 온 봄이
온몸을 죽음으로 휘감고 있는 것은 보지 못해
딱 거기까지만 함께 갈 인연들이다
(그림 : 최인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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