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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 매화가 핀다지요시(詩)/시(詩) 2020. 7. 8. 18:22
누가 어깨에 두 손을 살며시 얹었다 내려놓은 것처럼
매화가 핀다지요
저녁이 가도록 닿을 수 없는 거기 어디쯤
겨울 무에 고여 있던 바람이 흰 물감으로 흩뿌려져
먼 곳이 가까이 그려질 때가 있으니 그 무렵
매화가 핀다지요
나는 생각을 말해도 그려지지 않는 그림을 그립니다
어떤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순간
슬프고 아름다운 글자들이 보이고
물가를 거닐다 발목을 베인 것처럼
그네를 타다 노을 속으로 타들어간 것처럼
매화가 핀다지요
오래전 불 꺼진 저녁 윗목에서
눈언저리 붉어지도록
겹겹 생각들이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완강한 고요 속에서
간신히 귀를 열면 뭉텅뭉텅
미치도록 사무친 매화가 핀다지요
(그림 : 장용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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