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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옥 - 뒤로 달리는 사람시(詩)/시(詩) 2020. 6. 26. 15:15
바람이 불고 뒤를 향해 달리는
머리카락은 내 의지의 목록이 아니다
바람은 어제로 돌아갈 수 없지만
대부분 사람의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달리다 사람이 돌아서면
재빨리 방향을 바꾸는 바람
그가 달려온 길은 앞뒤가 없고
돌아서면 언제든 양방향이 될 수 있다
자신을 앉히려는 구두와
넘어뜨리려는 엇박자와 모든 것이 떠나고
누군가 흔들면
유일하게 남아있는
아저씨, 아저씨
흔들어 깨우면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사람
일주일 동안 아껴왔던 일들을
하룻저녁에 다 써버린 사람
바람이 그치고 뒤로 달리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기다렸다는 듯
툭툭 맞이하는 사람
우리는 우리가 앞이라고 생각하는 곳과
뒤쪽이라고 여기는 곳을
바꾸어가며 왕복하고 있을 때
바람은, 흩날리는 곳을 골라 달린다
손이 닳도록 머리를 쓰다듬고
고개를 숙이고 지퍼를 올린다
(그림 : 이형준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