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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위훈 - 고래 해체사시(詩)/시(詩) 2020. 6. 15. 18:19
만년의 잠영을 끝낸 밍크고래가
구룡포 부둣가에 누워있다
바위판화 속 바래어가는 이름이나
호기심으로 부두를 들었다 놓던 칼잡이의 춤사위이거나
잊혀지는 일만큼 쓸쓸한 것은 없다
허연 배를 드러낸 저 바다 한 채,
숨구멍이 표적이 되었거나
날짜변경선의 시차를 오독했을지도 모를 일
고래좌에 오르지 못한 고래의 눈이
칼잡이의 퀭한 눈을 닮았다
피 맛 대신 녹으로 연명하던 칼이
주검의 피비린내를 잘게 토막 낼 때면
동해를 통째로 발라놓을 것 같았다
조문은 한 점 고깃덩이나 원할 뿐
고래의 실직이나 사인(死因)은 외면했다
주검을 주검으로만 해석했기에 버텨온 날들이
상처의 내성처럼 가뭇없다
바다가 고래의 난 자리를 소금기로 채울 동안
고래좌는 내내 환상통을 앓는다
테트라포드의 느린 시간을 낚는다
주검의 공범인 폐그물도 인연이라고
수장된 꿈과 비명 몇 숨 그물에서 떼어내자
반짝, 고래좌에 별 하나 돋는다
바다의 정수리
늙은 고래의 흐린 동공에 맺힌 달,
조등이다
(그림 : 김규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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