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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 - 초저녁별시(詩)/시(詩) 2020. 5. 5. 18:24
저녁이 되자
허기 같은 그늘이 창가에 어른거렸다
속진(俗塵) 떨치고자 면벽(面壁)하는 구도자는 아니지만
문자나 톡 하나마저 없이 또 하루를 보냈다
오후엔 바깥에 나가
상수리나무 우듬지의
미열(微熱) 같은 단내를 더듬어보았다
수관(樹冠) 기슭과 선명한 가장자리 사이로
오월 하늘이
먼 시냇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햇빛은 야위어가면서도
아기단풍 연둣빛 손바닥들을 기어이 관통하고 갔다
오래전 이곳을 지나갔던 것들이
한순간에 한 번 더 우리를 지나가곤 한다
초저녁별 불쑥 손 내미는 때
(그림 : 안기호 화백)
Andante - V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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