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성배 - 기름 냄새가 난다시(詩)/시(詩) 2019. 11. 13. 02:02
살짝 스치기만 한 바람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내려앉은 햇살에서도 금방 기름 냄새가 난다
민글민글 반짝반짝
방바닥에서도 천장에서도 겉옷에서도 속옷에서도
처마 밑 국화 화분에서도 거실 한쪽 나무 분재에서도
숟가락에서도 젓가락에서도 더운밥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싱긋 웃는 얼굴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눈물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헉헉 숨소리 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손이 닿기만 하면 눈길이 머물기만 하면
기름이 배어 번들번들거린다
그가 마시던 막걸리 잔에도
그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에서도
그가 잘라 버린 손톱에서도
그가 입을 맞춘 아이 볼에서도
그가 지나다니는 골목,
실비집 구둣방 이발소 슈퍼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낡은 지갑 속 네 귀가 닳은 만원자리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뒤축이 닳은 구두에서도 소매가 해진 양복에서도
등록금에서도 학원비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아버지 몸에서는 언제나 기름 냄새가 난다(그림 : 서운영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수옥 - 골무 (0) 2019.11.14 표성배 - 살사리꽃 (0) 2019.11.13 표성배 - 탁상시계 (0) 2019.11.13 표성배 - 짐짓 모른 체 (0) 2019.11.13 구석본 - 가을의 의성어 (0) 2019.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