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비사 돌확에 약수가 얼었다
파란 바가지 하나 엎어져
약수와 꽝꽝 얼어붙었다
북풍이 밤 세워 예불 드릴 때
물과 바가지는 서로에게 파고들었겠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꽉 잡고 놓지 않았겠지
엎어져 붙었다는 건
오지 말아야할 길을 왔다는 뜻, 그러나
부처가 와도 떼어놓을 수 없는 이 결빙의 묵언수행을
지난밤이라 부른다
내가 잃어버린 지난밤들은
어디로 가서 철 지난 외투가 되었을까
돌확이 넘치도록 부어오른 얼음장이
돌아갈 수 없는 길의 발등을 닮았다
봄이여, 한 백 년 쯤 늦게 오시라
차갑고도 뜨거운 화두에 거꾸로 맺힌 저 대웅전
파란 바가지 한 채의 동안거가
절절 깊다
고요가 가슴이라면 미어터지는 중이다(그림 : 윤정섭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윤수 - 경부선 (0) 2019.11.08 사윤수 - 저녁이라는 옷 한 벌 (0) 2019.11.08 천융희 - 베이스(Bass) (0) 2019.11.08 김승희 - 길이 없는 길 위에서 (0) 2019.11.07 신현림 - 가난의 힘 (0) 2019.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