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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석 - 와불(臥佛)시(詩)/시(詩) 2019. 10. 20. 16:51
여보게들, 잠시만이라도 이리로 와
여기쯤 누워들 보시게
일주문부터 저 뒤 산신각까지
누거만년 땡땡한 나무기둥님들
징하기도 해라, 장딴지 자랑 그만하시고
마구니 모가지 질끈 밟고 눈 부릅뜬 천왕님들도
애고 무서워라, 슬몃 노여움 푸시고
어서들 이리로 와 일각이라도 쉬었다 가시게
가을 햇살 좀 좋은가
마당 한가운데 시치미 뚝 떼고 있는 석탑님도
이미 빨갛게 타오른 칸나꽃님 데불고 와
해우소 그늘 아래 팔베개라도 하여 주시게
남의 맘 헤아리는 일, 그게 자비 아니던가
그리고 대웅전 우리의 아우 부처님
한번쯤 가부좌 풀고 연보를 옮기어
여기 여기쯤 내 곁에 누워 있다가
풍경소리 설핏하면 선문답이나 한 소절 하고 가시게
어찌 그리 늘 근엄하신가
어떠하신가
아주 평안하지 아니한가
(그림 : 심수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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