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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 허기 충전시(詩)/시(詩) 2019. 9. 24. 11:21
수년째 성업 중인,
그 묘한 허기가 떠오를 때마다 가는
밥집이 내 일터 가까운 곳에 있다
‘허기 충전’이라는 간판을 내건
저 카운터의 흰머리 사내는 알고 있다는 걸까
한 끼의 식사 같은 거로는
원기가 충전되지 않는다는 걸
아니 충전된 허기가 더 검게 빛난다는 걸
밤새 달빛이 어루만지다 간 알 같은
부화를 기다리는
둥근 지붕의 저 식당에는
아닌 게 아니라
펄럭이던 검정 비닐에 구멍 뚫어
마늘을 심던 벌건 얼굴들의 담배연기와
인근 공사장 인부들 발꼬랑내 나는 군화와
막걸리를 마시다 시비가 붙어
막 씩씩거리는 짧은 머리의 롱 패딩들
허기의 사촌쯤인 불만과
불만의 양아들 뻘인 분노와 상처들이
연탄난로 위 주전자가 흘린 물방울처럼
따그르르, 츠잇츠잇 굴러다닌다
삶에 대한 계획 같은 건 아예 없는,
성실한 것이 아름답다고만 믿지 않는 눈빛의,
부시지 않는 빛을 두르고 있는,
음지식물 같은
저들은
먹을수록 충전되는 단단한 허기를
맷집처럼 키우러 집요하게
소슬한 저녁들을 찾아오는 것이 틀림없다
(그림 : 박성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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